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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2013)

Budapest Festival Orchestra - 2007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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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시작하기도 전에 가장 먼저 눈에 띈것은 오케스트라의 자리배치였다. 제1,제2 바이얼린이 무대왼쪽에 모두 위치하지 않고 왼쪽, 오른쪽으로 나누어 배치되는 변형은 간간히 보아왔으나 오늘처럼 괴상스러운(?) 배치는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플룻과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등이 지휘자 정면 가장 가까운 앞자리로 나와 있어 지휘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앉아 있다. 지휘자 오른쪽 부분과, 오른쪽 구석으로 배치되어 있는 첼로와 콘트라 베이스가 일반적으로 목관 악기가 자리잡는 무대 가운데 뒷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덕분에 팀파니와 기타 타악기가 좌 우 구석으로 밀려나 있는 형태다. 아마추어 공연에서 누가 이런 배치를 해 놓았다면 무식하다며 비웃었을지도 모를정도로 처음보는 배치였다. 하지만연주를 들어보니 이러한 배치도 그리 이상한 배치는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에서의 악기 배치라는 것 자체가 악기군들간의 소리가 가장 이상적으로 융화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라 하던데,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오늘 공연의 악기군 배치도 악기군들간의 소리가 적절하게 잘 섞여있는 좋은 소리를 들려주었다.

기대했던만큼의 공연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에는 그리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첫 곡으로 연주된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20분이 안되는 짧은 곡으로 연주의 문을 여는 맛보기 곡이었음에도 마치 오늘의 연주회 전 곡이 모두 베토벤의 음악으로만 이루어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농도 진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그 짧은 베토벤 서곡 연주 하나가 베토벤의 음악의 매력을 또 다시 한번 강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아 베토벤....'

아무리 실력 좋고, 감동이 넘치는 공연이라 하더라도 흠잡을 곳은 한 두 군데 있게 마련인데, 어제의 공연은 정말 어디하나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연주였다. 내한 공연 첫날 연주의 다소 부산함에 대해 예상했던 나로서는 최고의 기량으로 손색없는 연주를 보았다는 것이 어제의 연주중에서 가장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소위 말하는 삑사리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음은 앞에서도 이미 말했다. 그 아무리 세계 최고의 악단이라 하더라도 금관에서의 다소 불안한 음정 같은 것은 라이브 공연 무대에서 숨길 수 없는 것일 터인데, 어제 공연의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호른의 음정이 약간 흔들린 적이 있긴 하지만 여러대의 호른의 미묘한 음색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뿐 호른 파트 전체의 불안정으로 보기에는 주의깊게 듣지 않고는 알아채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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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김선욱 >


피아니스트 김선욱. 지난 2006년 리즈 국제 콩쿨 우승으로 본격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88년생이니 아직 만으로는 20세가 넘지 않았다. 명불허전이라더니 연주가 과연 심상치 않았다. 음악에 몰입하는 집중도와 기교면에서 만 20세를 넘지 않은 애띤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론 강력한 타건에서 젊음의 힘을 느낄 수 있음과 동시에 젊은 연주자 특유의 농익지 않은 모습도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터이다. 젊은이의 주름살 하나 없이 탱탱한 피부의 완벽함 그 자체로 흠잡을 것이 없지만 나이든 이의 주름살 패인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삶의 깊이는 발견하기 힘든 것을 젊은이의 피부의 약점이라 들 수는 없다. 김선욱이라는 검증된 재목이 세월의 흐름이라는 훈련을 통해 그 안의 재능과 삶의 깊이를 잘 조화시킨 거장으로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은 꽤나 어려워 듣는 것 조차 맘 편히 듣기 힘든 곡인데 김선욱군의 연주는 청중 또한 그의 연주에 몰입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후반부 공연이었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지난 99년이던가 98년이던가 플레트네프와 함께 내한한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공연으로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는 개보수 전의 세종문화회관 3층 꼭대기에서 들었기에, 실제 연주임에도 마치 아련한 기억속의 소리들을 끄집어 내는듯한 느낌으로 감상할 수 밖에 없었다. 무대와 가까운 자리에서 들은 오늘의 연주는 차이코프스키 4번의 미친듯한 광폭의 소음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 거침없이 내달리는 관악기의 포효에 귀가 약간 아프게 느껴질 정도로 충분한 음량을 통해 차이코프스키식의 '운명'에 대해 맘껏 느껴볼 수 있었다. 차이코프스키의 다소 미친듯한 질주의 부분들에서도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앙상블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완벽에 가까운 연주를 만들어 내었다. 3악장의 모든 현악기가 활을 내려놓고 손으로 현을 뜯는 장면은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기에 실연에서는 언제 보더라도 즐겁기 그지없는 장면이었다. 광란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대다가 이런 귀여운 음악을 연주하도록 하다니 차이코프스키도 참...

시종 지휘에 몰입하며 지휘봉 뿐만 아니라 입소리를 계속 내며 지휘에 몰입하던 피셔는 연주가 모두 끝나고 여러번의 커튼 콜 끝에 지휘대에 서서 관객들을 바라보며 뭔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밤 여러분께 연주할 곡은 바르톡의 .... 입니다' 이 말을 한국어로 말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발음 수준이 몇년간 한국어를 배워온 외국인과 비견할 만했다. 두번째 앵콜곡으로 헝가리 작곡가 코다이의 곡을 소개할 때에도 한국말로 '헝가리 작곡가 도흐나니의 ... 입네다'라고 소개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2005년에 내한해서도 찬사를 받았다더니 팬서비스를 제대로 할 줄 아는 피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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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반 피셔(Ivan Fischer) >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이를 이끄는 지휘자 이반 피셔의 이번 공연. 기대했던대로 아마도 올해 본 공연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명연주로 남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