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린 마젤은 1930년 3월 6일생이다. 만으로 벌써 83살이고, 우리나라 식으로 계산하면 84살이다. 보통 사람의 경우 이정도 나이가 되면 귀도 잘 들리지 않고 머리도 뻑뻑해지게 마련이다. 체력으로만 따져도 2시간 동안 서서 지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몸에 큰 무리를 줄 수 있는 나이이다. 그랬기에 작년 4월 8일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한 마젤의 말러 1번을 들으며, 아마도 살아 생전의 그가 지휘하는 공연을 볼 수 있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연주의 감동과는 별도로 마음 한 구석이 서글펐었다. 여전히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에는 날이 서 있었지만 세월 앞에 고령의 모습이 되어버린 그를 보며 혼자 마음속으로나마 그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었다.

그런데 그가 금년 2월에는 감기에 걸린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 대신 시카고 심포니를 이끌고 내한 공연을 가지더니, 4월 12일부터 4월 28일까지는 한,중,일을 투어하며 총 12번의 연주회 중 두 번의 연주회를 서울에서 갖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반가운 마음과 함께, 여전히 정정한 그의 행보를 볼 때 이번 공연 뿐 아니라 어쩌면 앞으로도 몇 번 더 그의 지휘를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앞섰다. 2015년까지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 자리도 맞게 되어 있으니 내년에도 뮌헨필과 함께 다시 한번 내한 공연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토벤의 코리올란 서곡으로 시작해서 베토벤 교향곡 4번과 7번, 그리고 앵콜곡으로 연주된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까지, 오늘 공연에서 마젤은 시종일관 카리스마 가득한 눈빛으로 오케스트라를 장악했다. 83세면 어제 있었던 일도 기억이 가물거릴 수도 있는 나이인데, 마젤은 모든 곡을 암보로 지휘하면서도 음 하나 하나와 악기를 정확히 매치 시키는 듯한 지휘로 오늘 연주된 곡의 한음 한음을 모두 자신이 컨트롤 하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작년 말러 1번의 지휘에서는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 베토벤 곡을 지휘하는 마젤의 모습을 보며 그의 지휘가 상당히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휘자의 지휘하는 모습은 청중의 입장에서는 그 자체로 보기 아름답기도 하고 감동을 더해주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지휘라는 것이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을 이끌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청중의 입장에서는 보기에는 좋아 보일지 몰라도 박자 맞추는 것 이상으로 의미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오늘 마젤의 지휘는 마치 청중들에게 다음에 이어질 곡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안내하듯이, 이제 어떤 악기가 소리를 낼 것이고, 이 다음에는 어떤 악기가 기존의 멜로디에 소리를 더할지를 하나 하나 알려주는 듯 보일 정도로 청중 입장에서는 친절한 지휘였다. 물론 그가 청중을 위한 지휘를 한 것은 아니다. 매번 연주되는 한 음 한 음을 빼 놓지 않고 그가 지휘하고, 어떤 악기도 악보대로 그냥 흘러가게 두지 않고 꼼꼼히 챙기는 그의 지휘가 청중에게는 너무도 친절한 안내처럼 보였을 뿐이다. 눈으로 연주를 보고 있으면서도 놓치기 쉬운 음들이 많은데, 그의 지휘 덕분에 익숙한 소리 속에 숨겨져 눈치 채지 못했던 악기 하나하나의 들어옴과 나감의 순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오늘의 또 다른 수확 중에 하나였다.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대해서도 짧게 말을 해야겠다. 그동안 나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교향악단 연주도 심심치 않게 들었기에 이제는 아무리 세계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의 연주라 하여 처음부터 뭔가 내공이 다르다는 느낌을 무조건 받거나 그러진 않는다. 그런데 오늘 뮌헨 필하모닉은 첫 연주곡인 코리올란 서곡 첫 마디부터 소리가 다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정통 독일 사운드라는 것이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모든 악기의 소리가 합쳐 하나의 악기가 된 듯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하나로 뭉쳐지는 소리의 질감에 첫 몇마디 연주에도 불구하고 ‘소리가 다르다’라는 점을 바로 인정했다. 첼리비다케가 뮌헨필의 상임지휘자로 있었던 것이 1979년부터 1996년까지이니 이런 뮌헨필의 사운드에서 첼리비다케의 흔적이 보였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심한 과장일 터이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이런 뮌헨필의 사운드에 첼리비다케의 모습을 잠시 오버랩해보는 감상을 가져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솔직히 베토벤 교향곡은 곡 자체가 아무리 훌륭하다 하지만 너무도 많이 듣고 익숙해져서 감동을 받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사실 이번 마젤의 내한 공연에서도 내심 내일 월요일에 예정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공연을 가지 못하고 휴일에 있는 오늘 공연을 오게 되는 것이 못내 아쉬웠었다. 그래도 베토벤 4번, 7번이면 나쁘진 않다 생각하고 마젤의 지휘를 한 번 더 볼 수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간 연주였는데, 마젤의 지휘하에 흘러나오는 뮌헨필의 사운드에 베토벤 4번, 7번 공연 자체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이 정도 감동이라면 다음에 내한할 때 베토벤 교향곡 레퍼토리를 들고 온다 하더라도 조금도 망설임 없이 두 손 들고 환영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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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Mahler(186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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