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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오면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공연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기 전만 하더라도 다소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좋은 공연만 있다면 시카고까지 가서라도 공연 많이 보리라 다짐을 했건만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확실히 한국에 있을 때보다 저렴한 가격에 좋은 공연을 볼 수 있긴 했지만 그렇게 생각보다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금 사정도 생각만큼 넉넉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연을 보기 위한 최우선 조건인 마음의 여유가 그리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좋은 공연 종종 있지만 오케스트라 연주 같은 비교적 대규모 공연은 흔치 않다. 흔치 않은 와중에 말러 교향곡 연주회라니. 2년간 앤아버에 머물며 말러의 교향곡 연주회를 과연 몇번이나 볼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최근 들어 말러 연주회에서 각광을 받는 마이클 틸슨 토마스의 연주라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공연이다.

1. 마치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라고나 할까, 말러의 교향곡을 앤아버에서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물이 좀 탁하다 한들 문제가 되지 않을 상황인데, 2번 교향곡에 그것도 마이클 틸슨 토마스 지휘의 연주라니.... 이건 보통 물이 아니라 1등급 지하 암반수다. 이미 감격하고 들을 자세가 되어있는 공연이기도 했지만 공연 자체 또한 수준급이었다. 흠 잡을 데 별로 없는.... 괜히 마이클 틸슨 토마스가 아니었다.

2. 다른건 다 좋았는데, 합창단은 앤아버 소재의 합창단이었다. 단원들 중에 60세 이상이 넘은 분들도 상당히 많이 보이는, 그래도 한 때는 성악을 전공하신 분들이실 것이라 생각은 되고, 실력은 좋은 합창단이라 들었지만,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원수와 그로 인한 성량의 부족함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보통 사람 몸의 두배 가까운 체격을 가진 베이스 성량의 소리를 낼만한 단원들 또한 찾아보기 힘들었다. 풍부한 저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소 체험하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해야 할까. 아이맥스 초대형 화면으로 영화 보는데 소리는 PC 스피커로 듣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이날 공연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바로 합창에서의 절대적 성량 부족과 빈약한 저음이었다.

3. 한국 청중들은 특히나 박수에 너무 헤프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었다. 좀 유명한 연주자다 싶으면 공연이 끝난 후 공연내내 졸던 사람조차도 기립하여 환호하고, 브라보를 외치는 광경이 우스꽝스럽다 지적하던 기사라던지 이야기를 많이 접했던것 같은데, 꼭 한국만 그런것은 아닌 것 같다. 지난 10월에 있었던 베를린필 공연 때에도 그렇고, 이번 말러 2번 공연도 그렇고... 거의 90% 이상이 청중들이 기립하여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는 와중에 혼자 쭈뼛하게 앉아 있었다. 기립박수는 아무때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속으로 혼자 중얼거리며...ㅎㅎㅎ

4. 너무 앞자리여서 소리가 좋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공연장 자체가 비교적 아담한 수준이어서 그런지 앞자리라 해서 크게 나쁠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지난 10월 베를린필 공연시 무리해서 S석 구매하면서 그나마 남아 있는 오른쪽 구석자리 선택했다가 해당 좌석 위치에서의 형편없는 소리에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천지 차이다.

2주나 지난 후라 당시의 생생한 기억도 가물가물해지고, 별로 쓸 이야기도 없지만, 그래도 다른 공연도 아닌 말러의 공연이라 기록차원에서라도 그냥 짧게 기록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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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uechner
    2010.04.04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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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바쁜 와중에 연주회를 빼놓지 않고 챙기는군!

    나도 한때는 이곳 뮌헨에서 괜찮은 연주회라면 일주일이 멀다하고 갔었는데... 장거리 출퇴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좀처럼 마음의 여유가 안 생겨서 잘 못가고 있네그려. 그나마 간만에 큰 맘 먹고 지난 2월 다니엘 바렌보임 독주회에 갔었는데, 앞으로 있을 연주회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있다네.

    나도 여기에서 느낀 점 하나...

    그래도 고전 음악하면 내세울게 많은 독일이고, 문화적 토양 역시 잘 갖춰져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회에 자주 가다보면 일부 상식 밖의 일도 심심찮게 벌어지더만. 예를 들면 연주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정적을 깨고 핸드폰이 울린다던지(!), 악장 중간중간에 간헐적으로 박수가 터져나온다던지(!!), 공연 중간에 나가버린다던지(!!!). 사태가 이쯤되고 보면 박수에 후한 것 정도야 애교로 봐줄수있지. 물론 매번 연주회때마다 이런 재난에 가까운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아니고, 가끔 있는 일이지만 말야.

    나역시 주위 관객들이 한다고 해서 부화뇌동식으로 와~ 하면서 기립박수하는 것에는 왠지모를 반감을 가지고 있는데 (알량한 자존심의 발로?), 그야말로 감격에 겨워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던 연주회를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끌라우디오 아바도 지휘의 구스타프 말러 유겐트 오케스트라의 연주회, 얼마전의 다니엘 바렌보임의 피아노 독주회 (쇼팽), 그리고 마리스 얀손스 지휘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BR 오케스트라)의 연주회 (베토벤 9번)를 꼽을 수 있겠구먼.
    그리고 로린 마젤이 뮌헨을 떠나 뉴욕으로 향하기 전 BR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서 마지막으로 말러 교향곡 전곡을 불과 3주만에 한번 훑은 적이 있는데, 그때 이 오케스트라의 괴물같은 역량을 처음으로 피부로 느낄 수 있었지.

    암튼... 요새도 좋은 연주회는 넘쳐나고, 인생은 짧은데 이 좋은 환경을 적극 활용하지 못하고 그저 1차적인 생존에만 급급한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한동안 잊고 살다가 네 글을 읽고 그저 가슴에 불만 지피는구먼.

    PS. 이곳 유학생 중에는 중학교 때부터 뮌헨에서 공부했다는 음악도도 있는데, 부르크너 교향곡을 첼리비다케 지휘의 뮌헨필 연주로 종종(!) 들었다는군. 무척 부럽더만...
    • 2010.04.05 10:0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이번 시즌은 크게 볼만한 공연은 다 끝난 것 같고, 이제 9월부터 시작하는 새 시즌에도 좋은 공연 있는지 눈여겨보야죠. 시간적 여유만 있으면 자리 좀 나빠도 학생티켓으로 정말 싸게 볼 수 있는데...마음의 여유라는게 쉽지 않네요.

      여기 떠나기 전에 불레즈 지휘 연주 한번 보고 가는게 소원이고... 형 공연 중에서는 아바도 지휘 연주가 제일 부럽네요. 그 로린 마젤이 말러 교향곡 전곡 훑을 당시에 형이 연주회 간다고 자랑하던 글이 여기 어딘가에 있던 것 같은데...^^;;;;

      나이먹고 여유 생기면 연주회 많이 다녀야지 생각했는데, 그게 말처럼 되는 건 아니고.... 결국 가장 즐거웠던건 과외로 번 돈 쪼개서 연주회 가고, 학교 째고(?) 리허설 하는 거 몰래 들어가서 보고 하던 때가 제일 즐거웠던 것 같아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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