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동혁이 데뷔한 지 벌써 10년이나 되었단다. 84년 생이니 아직도 한창 젊은 나이인데 벌써 10주년이라니 10년 전 그가 얼마나 어린 나이였는지 다시 한번 새롭게 깨닫는다. 사실 데뷔 10주년이라는 말은 지난 2002년 EMI에서 첫 앨범을 발매한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일 뿐 이미 96년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쿨에 입상하면서 이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으니 그에 대해 들어본 것은 10년이 훌쩍 넘은 일이다. 이후에도 국제 콩쿨 여러 곳에서 수상을 하며 명성을 쌓아 왔는데, 그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것은 2003년도 퀸 엘리자베스 콩쿨에서 3위 입상을 한 후 수상거부를 했던 때였던 것 같다. 나도 가물가물 하긴 하지만 당시 그의 수상거부가 한참이나 이슈가 되어 그에 대한 찬반 논란이 한참 일었던 기억이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사계>를 실연으로 처음 들을 수 있는 기회라는 게 이번 그의 리사이틀에 찾아간 가장 큰 이유였다. 아주 오래 전, <사계> 하면 비발디의 <사계>밖에 알지 못했던 시절에 차이코프스키의 <사계>가 생소했던 적이 있다. 피아노 음악에도 그리 익숙지 않았던 때였기에 그냥 ‘이런 <사계>도 있구나’ 하는 식으로 흘려 듣고 지나갔는데, 이제는 뭐 여러 곳에서 배경 음악으로도 많이 들어서인지 12곡 한 곡 한 곡이 귀에 살갑다. 게다가 이제는 피아노 독주도 즐기게 된 지 한참 되었으니 실연으로 듣는 차이코프스키의 <사계>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기회다.

노랗게 머리를 물들이고, 여전히 앳된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 임동혁은 다소 수줍은 듯한 자세로 연주를 시작했다. 10여년 전 데뷔 시절의 그의 연주를 들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의 섬세한 터치가 10년이라는 세월에서 다듬어진 절제미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다소 나약해 보이는 듯한 연주가 그의 원래 색깔이었는지를 바로 알 수는 없었다. 섬세한 감정 표현을 능수능란하게 이어가는 그의 강점을 확인하면서도 강렬한 감정 표현에는 다소 힘이 부치는 것 아닌가 하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시간을 내어 연주회장을 찾아가길 백번 잘했다 생각되는 만족스러운 연주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호리호리한 그의 몸을 보며 강렬한 연주를 하기에는 힘이 좀 부족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결론을 나름대로 내렸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이후 이어진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와 피아노 소나타를 통해 거의 불식시킬 수 있었다. 100킬로그램에 가까운 큰 덩치를 지닌 피아니스트의 피아노를 부술 듯한 타건과는 분명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임동혁의 연주에도 연주회장을 압도하는 파워와 강렬함은 분명 존재했다. 그냥 쌓인 명성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업데이트 안된 초기의 연주 프로그램 안내를 숙지하고, 당일 프로그램 책자도 사지 않고 들어갔던 연주에서 2부 첫곡으로 연주된 김정권의 <봄의 눈빛들>은 생각지 못한 깜짝 선물이었다. 연주회 후에 검색해보니 이 곡은 작곡가 김정권이 임동혁에게 헌정한 곡이라는데, 악보를 따라가며 연주하는 임동혁의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신선한 볼거리였다.

연주하는 임동혁을 8시 방향에서 보는 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연주하는 그의 손가락이 선명하게 보인다는 장점은 있는 반면 그의 연주하는 표정을 읽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는데, 연주 중 감정에 격한 그의 흥얼거림이 들릴 때마다 그의 표정과 입술의 움직임도 볼 수 있는 자리였다면 좋을 뻔 했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평일엔 개인적인 시간을 거의 낼 수 없는 일을 하다 보니 쉬는 주말에는 주로 집안에 콕 들어박혀 쉽게 읽히는 소설 위주로 책을 집중적으로 파면서 나름의 여가를 즐겨왔다. 그러다 보니 너무 집안에만 숨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평일은 불가능하더라도 토요일에 괜찮은 연주회가 있으면 일부러라도 찾아서 들어야겠다는 다짐을 최근에 했었다. 그런 다짐으로 처음 가게 된 임동혁의 연주회였는데, 앞으로도 무리를 해서라도 주말 연주회를 찾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해 준, 기억에 남을 만한 연주회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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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Mahler(186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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