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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이 지휘봉을 잡게 되면 평소 제돈 주고 공연 보기에는 아까운 국내 오케스트라의 입장료 가격도 평소 해당 오케스트라 공연표 가격에 비해 몇배로 치솟는다. 물론 객석 또한 거의 매진에 가까운 판매를 보인다. 정명훈이 몇번 리허설을 이끈다 하여 해당 오케스트라의 실력이 갑자기 나아지는 것도 아닐터인데 말이다. 물론 정명훈이 국내 출신의 거의 유일한 세계적인 지휘자일 뿐 아니라 명성에 걸맞는 실력을 가졌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다소 과도한 정도로 환대를 받는 국내 연주장의 반응에 약간 의문을 표시하는 선에서의 문제 제기일 뿐이다.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정명훈이 10년전 큰 뜻을 품고 창단한 오케스트라다. 상설 오케스트라의 성격은 아니고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시아 출신의 유명 단원들을 모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성격으로 창단한 것이다. 1년에 한번 소집되어 몇개 나라를 돌면서 연주회를 갖는 오케스트라이지만 중간에 6년정도 소집되지 않은 공백기간이 있으니 역사에 비해 그 연륜은 비교적 짧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인천시의 후원에 힙입어 연고지를 인천으로 옮기고, 2010년 이후로는 상설 오케스트라로 발돋움하는 계획까지 갖고 있다고 한다.

연주자 각각의 기량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짧은 시간 모여, 나라를 돌며 하는 연주의 질에 대해 솔직히 기대반 걱정반이었다. 게다가 나는 아직까지 정명훈이 지휘하는 연주를 실연으로 접해본 적이 없다. 그러기에 국내에서 다소 지나치게 부풀려진 정명훈 아우라에 대한 우려를 접했던 것이 계속 기억에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이번 연주회는 좋은 공연에 대한 기대보다는 정명훈이라는 지휘자의 본 모습을 한번 확인해보고픈 마음이 더 앞서는 연주회였다.

서곡으로 연주된 진은숙 작곡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서곡이었다. 생각보다 짧은 곡이었지만 이 곡을 통해 아시아필하모닉의 불안정한 앙상블과 호흡에 대한 우려는 모두 벗어버릴 수 있었다. 경쾌한 곡이지만 현대음악인 만큼 각 악기들간의 연주가 뒤섞여있어 정신없이 보이는 곡이다. 서곡을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흐트러진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이 곡의 복잡함 가운데 연주의 치밀한 진행을 확인할 수 있는 연주였다. 아시아출신 최고의 오케스트라 단원들만 모아놓았다는 것이 바로 이런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이유가 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드보르작 교향곡 8번은 다소 산만한 객석의 분위기로 퇴색되긴 했지만 이렇게 완성도가 높은 드보르작 8번은 앞으로도 쉽게 들어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보르작 교향곡에 강점을 지닌 정명훈의 지휘답게 곡이 지닌 최대한의 것을 끌어내어 보인 연주였다고 생각된다. 진정한 대가의 진가는 시작에 앞선 자세에서부터 이미 다르게 느껴진다고 하는 말이 있다. 이처럼 어떻게 보면 밋밋하게 느껴질 곡에서 정명훈은 '자세'에 해당하는 제대로된 기본기에 대해서 확실하게 어필해 주었다. 연주자 각각의 기량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호른을 비롯한 관악기 연주는 스튜디오 녹음과 같은 짜집기 음원에서나 들어볼 수 있을것 같은 완벽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브람스 교향곡 1번은 말할 것도 없다. 아주 약간의 흐트러짐이 보이긴 했지만 흐트러짐의 정도가 다른 여타의 연주에서는 흐트러짐의 범주에 넣지 않고 완벽함의 범주안에 포함시키던 범위 내에서의 약간의 흐트러짐 정도일 뿐이었다. 정명훈의 장악력도 놀라웠지만 단원들의 반듯한 연주와 함께 보여지는 여유로움은 더욱 놀라웠다. 연주하는 곡에 대해 대해 충분히 파악하고 있을 때에만 보여질 수 있는 여유로움을 연주되는 내내 흠씬 느낄 수 있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다소 걱정이 앞서는 연주였는데, 예상과 달리 완벽에 가까운 최고의 연주를 듣게 되어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던 연주회였다. 유명 아티스트의 경우 국내에서 다소 오버스러운 환대를 받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정명훈의 지휘를 실연으로 보니 정명훈의 경우에는 한 오버가 그다지 걱정스러운 수준은 아닌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시아 필의 10주년 기념 연주회여서 정명훈씨도 다소 흥분한 것일까. 청중들의 수준은 가히 칭찬 받을 수준이 결코 아니었는데 청중들을 칭찬하는 말까지 곁들였고(이 말에 관객들로부터 멋쩍은 웃음이 터져나왔다.) 마지막엔 일어나서 집에 가라는 제스처인지 아니면 기립박수를 치라는 의미인지 약간 헷갈리는 상황에서 청중들을 일어나게 만드는 제스처까지 하며 무대를 떠났다.

아시아 필의 이번 연주를 들으며 정말 연주는 하나를 들어도 제대로 된 연주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만들었다. 지갑사정이 다소 안좋아지더라도 좋은 연주는 찾아가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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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Mahler(186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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