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오늘의 연주회는 부천필의 정기 연주회라는 것에 앞서 '손열음'이라는 피아니스트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픈 생각이 앞섰던 연주회였다. 1986년생인 손열음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본 사람의 상당수가 단번에 그의 팬이 되어버리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손열음의 연주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녀의 연주를 들어볼 몇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번번히 놓친 나로서는 이번 연주회를 통해 비로서 그녀의 연주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대가 부푼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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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음>



물론 이번 부천필의 정기연주회를 지휘한 스테판 블루니에라는 지휘자도 빼놓을 수 없겠다. 사실 이 지휘자에 대해서 이전에 알고 있던 것은 없었다. 다만 사진으로 보이는 착하고 여려보이는 모습에서 이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스타일도 과연 부드럽기만 할 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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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fan Blunier>



오늘 연주의 첫번째 곡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스페인 기상곡 작품 34'. 아마 지나가다 몇번 들어보긴 했을테지만 주의해서 음반을 들어본다거나 연주회에서 들어본 적이 없던 곡이다. 음악회의 처음을 여는 간단한 서곡으로 치기에는 오늘의 첫 연주의 시작은 너무도 깔끔했다. 스테판 블루니에라는 지휘자와 몇번의 리허설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곡 전체에 대해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간의 충분한 조율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연주였다. 어디 하나 흠잡을 수 없는 연주가 끝나자 다들 만족스러운 박수를 보냈고 지휘자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여줬다. B열 오른쪽 뒷쪽자리가 정말 소리가 좋은건가. 이 곡만 듣고 돌아가도 충분히 만족스럽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두번째 곡은 드디어 우리의 손열음양이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듣던대로 다소 털털하면서도 아직은 앳되긴 하지만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표정으로 손열음양이 무대에 들어섰다. 그리고 바로 시작한 연주. 피아노를 치는 손열음양의 손의 모양을 보며 피아노 치는 손가락의 모습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기교를 부리기위에 일부러 멋스럽게 움직이는 손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다. 음악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부드럽게 터치하는 손의 자세와 새털처럼 가볍게 움직이는 손가락. 그런 부드럽기만한 동작과 터치에서 힘있는 피아노 소리가 울려나온다는 사실이 쉽게 믿겨지지 않는다.

이승엽 선수가 홈런을 치는 모습을 보면 홈런 치는게 무척이나 쉬워보인다. 그냥 방망이 휘두르니 공이 훌쩍 넘어가는 듯한 느낌 말이다. 타이거 우즈와 같은 선수가 골프 퍼팅을 하는 걸 보면 공이 알아서 홀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 보인다. 누구나 그 자리에 서서 툭 치면 다 홀 속으로 공이 빨려들어갈 것 같이 보인다. 최고의 프로가 하는 행동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프로가 하는 일들이 너무나 쉽게 느껴진다. 오히려 아마추어인 선수가 방망위를 휘두르고 골프채를 휘두르는 것을 보면 공 맞추기가 꽤나 힘들고, 홀 근처로 골프공을 보내는 것조차 쉽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오늘 손열음의 피아노 연주가 그랬다. 마치 손가락이 건반을 터치하지 않고 그냥 건반 위에 떠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데 피아노가 알아서 소리를 내는듯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손열음의 연주였다. 피아노가 저렇게 쉬운거구나, 나도 저렇게 하면 저런 소리가 날듯한 착각이 들게 만드는 연주였다. 많은 사람들이 손열음에게서 느끼는 매력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음악에 몰입하면서도 오버하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힘있는 연주, 저절로 피아노가 울리는 듯 자연스러운 연주가 바로 손열음만의 매력인 듯 싶다.

연주가 끝나고 박수에 답례하는 손열음의 모습에서 20대 초반의 풋풋함과 함께 그녀의 털털한 성격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손열음의 연주를 처음 접하게된 오늘, 앞으로 손열음의 연주는 왠만하면 꼭 챙겨서 찾아다녀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피아노라는 악기를 다른 악기에 비해 월등하게 좋아하거나 하지 않는 나로서는, 누군가의 피아노 독주회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게 만드는 연주였다. 물론 현존하는 수많은 대가들의 연주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분명 20대 초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손열음의 연주는 듣는 이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그만의 매력을 갖고 있다.

후반부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연주는 더이상 바랄게 없는 완벽한 연주였다. 부천필의 역량은 이처럼 다소 복잡하고 현대음악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된 곡에서 가장 잘 발휘되는 것 같다. 모든 악기들이 다함께 소리를 높이는 순간에 뭔가 난장판같은 느낌을 주지 않고 여전히 흐름에 따라 음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즐기게 만드는 연주는 국내에서는 흔히 찾아보기 쉽지 않다. 리듬을 타는 앙상블에서 좋은 연주를 보여주는 것도 실력임에는 분명하고, 이러한 앙상블에서 완벽한 연주를 보여주는 연주단체도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와 같은 다소 복잡한 음의 진행이 있는 연주에서도 이러한 앙상블을 느끼게 해주는 연주단체는 아직은 그리 많이 찾을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또한 쇼스타코비치 5번 연주가 어느 악기 파트에게나 힘들었겠지만 특히 현 파트 연주하기가 힘이 많이 들었을텐데 속시원할 정도로 완벽한 연주를 해주었다.

특정 작곡가의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는 것을 교회 설교에 비교한다면 강해설교라고 볼 수 있을까. 이미 말러 교향곡을 통해 강해설교를 멋들어지게 완성한 부천필. 부천필은 왠만하면 앞으로도 이런 강해설교같은 연주회를 계속 해줬으면 좋겠다. 부천필을 통해 베토벤도 듣고, 모차르트도 듣고, 라흐마니노프도 듣고, 이것도 듣고 저것도 듣고 하는 것도 좋지만, 부천필을 통해 말러 교향곡 전곡,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곡과 같은 강해설교를 계속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부천필은 무엇보다도 이런 강해설교에서 듣는이의 속을 후련하게 만드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부디 강해설교같은 연주를 해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p.s. 1986년생 손열음양이 아직 20대 초반의 어린 소녀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사진 한장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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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Mahler(186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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