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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대학교 60주년 기념, 서울음대 음악회. 가장 많은 연주인들이 나올 수 있고, 가장 다양한 악기들이 나올 수 있고 가장 다양한 사람들이 도드라져 보일 수 있는 연주회. 그러면서도 이음악 저음악 소품위주의 소꿉장난같은 딴따라 수준의 음악회가 아닌 소위 '서울대'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갖고 싶어하는 웅장함 또한 잃고 싶지 않은 연주회. 이런 연주회를 만들기 위해 Gustav Mahler의 교향곡 8번만큼 가장 적절한 음악이 또 있을까. 어떻게 보면 머리를 탁 치게 만들 정도로 잘 고른 곡이고, 어떻게 보면 오만하게 보이기도 하는 곡 선정이다.

2. 짜장면의 그 달콤하면서도 기름지면서도 진한 맛에 뿅간 아이에게는 오직 맛있는 짜장면만 있을 뿐이다. 이건 좀 맛없는 짜장면, 이건 좀 느끼한 짜장면, 또 저건 좀 밍밍한 짜장면, 이런것 없다. 짜파게티조차도 없어서 못 먹을 정도이다. 아직 짜장면에 대해 의심을 품고, 짜장면의 면발의 품질과 춘장의 수준에 대해 논할 정도로 입맛이 단련되지 않은 어린아이일 뿐이다. 소스가 심하게 타지 않은 수준이라면 짜장면이라는 그 사실만으로도 어린아이를 충분히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말러의 모든 교향곡 9곡중에(완성곡만 따지자면), 혹은 10곡중에(미완곡까지 포함하면), 혹은 11곡중에(대지의노래까지 포함하면) 가장 마지막까지 친해지기 어려웠던 곡이 바로 이 8번 '천인교향곡'이다. 말러 전집을 주욱 듣다가도 이 8번을 들을 차례가 되면 한참을 망설이곤 했다. 어떻게든 뛰어넘겨버리고 싶을 정도로 친해지기 힘든 곡이었다.

8번 교향곡의 참 맛을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는 나에게 8번 교향곡 연주회는 어린시절 짜장면과 같다. 연주 수준이 높고 낮음을 따지기 전에 일단 8번 연주회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이다. 현이 불안정하고 관이 흔들려도 그저 좋다고 꼬리칠게 뻔하다. 실연으로는 두번째 접하게 되는 이 8번 연주는 그래서 더더욱 객관적인 연주평이 될 수 없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연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는 노력을 해보건데, 아주 괜찮은 연주였다. 서울대학교 60주년을 축하한다며 서울대 음대 관계자들이 모여 각자 자기 뽐내느라 앙상블이 무너지는 것은 아랑곳 하지 않는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대다수 재학생으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의 소리도 가끔 자신없는 모습이나, 지극히 학생다운 소리를 들려주는 부분이 종종 있긴 했지만 국내 정상의 오케스트라들의 소리와 견주어 못하다 할만한 부분을 콕 찝어내긴 어려울 정도로 열연이었다. 정말 소화해내기 힘든 곡 결정해놓고 여러모로 맘고생, 몸고생 많이 했겠다는 것을 안봐도 알 수 있었다. 한두번 대충 리허설 하고 연주하는 연주회보다 수십번 이상 연습했던 노력이 보이는 연주회였다.

4. 오늘의 수준급 연주와 앙상블이 나올 수 있음은 물론 그 많은 부분 임헌정이라는 지휘자의 역량에 빚을 지고 있다.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연주해냈다는 그의 경력뿐만 아니라 이제 그 누구도 그를 국내 최고의 지휘자라는 것에 이견을 달지 않는다. 조용한듯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음악에 대한 열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가 다소 유치하고, 그들만의 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한 '서울대학교 60주년 기념 음악회'라는 어정쩡한 팻말을 달고 있는 연주회를 정상급 연주회로 만들어 냈다. 임헌정이라는 지휘자가 없었다면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이라는 자존심만으로는 말러 8번을 기념 음악회 연주곡으로 올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그가 지휘하는 연주회는 앞으로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가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하게 만든다. 수십년 후 다시는 그의 지휘를 실연으로 볼 수 없게 되는 날이 올 때, 지난날 그가 지휘한 연주를 수도 없이 봤다는 사실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다.

5. 말러의 연주회를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특히 말러 2번, 3번, 8번등을 실제 연주로 들으면 말러 이사람 정말 골때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골때리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런식의 음악을 절대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당대 시대의 사람들에게 지휘자로서의 명성은 인정받되 자신이 작곡한 음악에 대해서는 인정받지 못한 것도 지극히 당연하게 보인다. 내가 말러와 동시대에 살았더라면 나 또한 말러라는 음악가에 대해 극도로 혐오감을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말러가 나보다 한세기를 앞서 살아가, 내가 말러에 열광할 수 있는 시대적 간격이 주어졌음은 감사한 일이다.

암튼 말러 이사람 정말 골때리는 천재 자폐아다. 그 위대한 베토벤의 음악마저도 같이 놓고 보면 규모면에서 초라한 촌구석 음악처럼 초라하게 만들어버리는 이런 음악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100년전 이걸 초연하려고 모인 연주자들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6. bonus

- 말러 8번 교향곡 중 1부의 첫 시작 부분 1분 30여초를 듣고 싶다면 아래 플레이어를 실행시키면 된다.

- 말러 8번 교향곡 중 1부의 끝 부분 3분 정도를 듣고 싶다면 아래 플레이어를 실행시키면 된다.



* 원칙상으로는 이 정도 짧은 클립이라도 올리는 것이 저작권에 문제가 되지만, 말러의 음악을 소개한다는 차원에서 올려본다. 혹시라도 몰라 지휘자, 연주자, 음반명은 밝히지 않는다. 물론 추후에 문제가 된다면 즉시 삭제할 것이다. 참고로 내가 들어본 음반 중 가장 괜찮은 8번 연주 음반에서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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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Mahler(186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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