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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헐리웃 영화나 미국 드라마 속에서 종종 한국과 관련된 장면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단순히 한국인이 등장하는 것이 전부인 경우도 있지만 근래 들어서는 아예 극 중 한 장면의 배경이 한국내의 한 곳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많다. 사실 그러한 장면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그리느냐는 그 작품속에서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만 그 장면을 보게될 대다수 미국인,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非한국인에게 그 곳이 ‘한국처럼’ 느껴지도록만 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토종 한국인에게는 대부분의 경우 그 장면들이 생경함을 넘어 기괴함을 느끼게 하는 장면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非한국인에게는 그러한 장면들이, 지금까지 잘 알지 못했던, 이국적인 한국의 모습으로 비춰지겠지만 한국인에게 그 장면은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어색함으로 가득차 있는 가상의 공간일 따름이다.

이태백, 왕유, 맹호연등과 같은 동양시인의 시를 독일어로 번역한 책을 읽고, 말러가 그 시에 곡을 붙여 작곡한 것이 바로 ‘대지의 노래’이다. 시를 독일어로 번역하며 의미의 색채가 달라지고, 말러가 다시 이 독일어로 번역된 시집을 놓고 곡을 붙이며 부분 부분 각색을 하면서 또다시 색채가 달라져 버렸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유추가 가능하다. 비록 중국 시인들이지만 같은 동양 문화권에 있는 우리이기에 이태백과 같은 시인의 색채에 대해 서양인들에 비해 비교적 익숙하고 중국풍의 음악에도 비교적 익숙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말러의 교향곡 중 그 어느 곡이라고 쉽게 친숙해질 수 있고, 어떤 곡이라고 기괴하게 느껴지지 않는 곡이 있을까마는, 특히 이 ‘대지의 노래’는 친숙해지기 정말 어렵고, 말러의 교향곡 모두가 친숙해진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기괴함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러한 기괴함이 이 곡의 형식상의 특이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말러가 그린 동양의 색체가 동양인인 내가 볼때에 더욱 기괴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게다가 이런 기괴한 음악을 쇤베르크가 실내악 버전으로 편곡을 했다고 한다. 쇤베르크의 편곡은 기괴함을 더하면 더했지 뺄 요소는 아닐 것이다. 어제의 연주는 이러한 나의 추측이 어느 정도는 맞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도록 만들어 준 연주회였다.

말러의 음악을 아주 단순화해서 설명할 때 ‘기괴함’과 ‘과장’이라는 두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미세한 소리에서부터 귀가 찢어질듯 한 음량까지의 폭이 넓은 과장스러운 표현으로 가득찬 말러의 음악을 실내악으로 편곡한다는 것은 그러기에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예상했던대로 실내악으로 편곡된 ‘대지의 노래’는 이러한 과장의 색체가 다소 퇴색된 자리에 말러의 ‘기괴함’만이 남아 있었다. 신기한 점은 말러의 트레이드 마크라 여겨질 주요한 한 부분이 결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말러로 가득차 있는, 말러로 충만한 음악이었다는 사실이다. 실내악 버전의 ‘대지의 노래’는 여전히 말러의 음악이었다.

‘TIMF 앙상블’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연주단체가 주최한 어제의 공연은 이 연주 단체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한 연주였다. 말러의 교향곡을 수십차례 실연으로 들어본 경험이 있지만 ‘대지의 노래’는 아직 한번도 실연으로 들어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이 연주회에 대한 나름의 기대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실내악 버전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처음 실연으로 듣는 ‘대지의 노래’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던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TIMF 앙상블’의 앙상블은 정말 놀라웠다. 연주회 내내 한번의 흐트러짐도 없이 일관된 수준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유진선이라는 한국인 작곡가의 현대음악을 연주할 때에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 앙상블을 보여주며, 이 단체의 내공이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어쩌면은 이러한 팀웍이 어제의 그 ‘기괴함’만 남아버린, 반쪽짜리 말러의 ‘대지의 노래’라는 곡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고 오히려 말러 음악의 엑기스만 뽑아낸 듯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인지도 모를일이다.

‘예매해 놓긴 하지만 막상 토요일 그 시간이 되면 그냥 집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할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꼭 두 눈과 귀로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에 예매한 공연이었다. 물론 내 예상대로 어제 오후부터 찌뿌둥한 몸을 배배 꼬며 그냥 집에서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제의 공연은 그러한 게으름을 떨쳐버리고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는, 2만원이라는 금액이 결코 아깝지도 않았을뿐더러 몇배의 감동을 안겨준 공연이었다. 취소하지 않고 가길 정말 잘했다.

p.s. 대학원 석사시절, 조악하기 그지 없는 리사이틀홀의 음향을 개선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연구실에서 참여했던 적이 있다. 밤 12시가 되어 측정 장비를 들고 아침 6시까지 밤을 새 측정을 하고,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개선점을 찾아냈던 기억이 난다. 아, 물론 나는 석사 1년차로 했던 일이라고는 스피커 이리 저리 들고 다니는 노가다 외에 이 프로젝트에 뚜렷하게 기여한 것은 없다. 암튼, 어제 들어본 리사이틀의 음향은 확실이 예전보다 좋아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홀 자체가 너무 작아서 그런것인지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적어도 내 귀로는 이 정도 규모의 공연을 하기에는 금상첨화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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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Mahler(186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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