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남태령 고개가 그렇게 막힐 줄 몰랐다. 7시 공연이니 6시에 집을 나서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집에서 나와 버스타고 사당까지 넉넉 잡아 20분. 사당에선 그냥 택시로 예술의 전당까지 넉넉잡아 10분이니 6시에 나와도 시간이 넉넉하다 생각했다. 공연장 도착해서도 시간이 남을 것을 예상해 공연 전에 읽을 책까지 챙기고, 약간 꾸물대다 집을 나온 시간이 6시 10분. 그래도 여유가 넘쳤다. 그런데 왠걸, 남태령 고개 밑에서부터 꽉 막혀 있는 길을 보며, 토요일은 버스 전용차로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며, 또 토요일은 이 시간대에 여기가 막힌다는 것을 또 한 번 잊었다는 것을 자책하면서도 그래도 늦진 않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정체는 생각보다 심했고, 남태령 고개마루에 버스가 올라갔을 때 이미 시간은 6시 40분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버스가 사당역에 도착하는 시간만 해도 7시가 넘겠다 생각이 들어, 재빨리 기사분께 부탁해 버스를 내려 남태령 역으로 뛰었다. 지나가기만 했지 한번도 들어가본 적 없는 남태령역은 게다가 지하 방공호 수준이었다. 남태령 고개 밑을 지나가는 지하철이야 이전 역이나 이후 역이나 별 차이 없는 높이에서 지하철이 다닐테고, 역 입구만 남태령 고개 마루에 있는 것일 테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까마득한 계단을 헐떡이며 한참을 내려가 개찰구를 지나 방향을 트니 좀전 보다 더 까마득한 에스컬레이터가 기다리고 있다. 아무튼 여기까지는 그래도 숨차게 지나는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지만 그 이후는 뭐 지하철 타고 사당역 도착해서 택시타고 예술의 전당 간 이야기니 굳이 길게 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예술의 전당 도착시간? 다행히 6시 57분에 예술의 전당 주자창 입구에 도착해 헐떡이긴 했지만 공연 전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헐떡이느라 정신 없었으니 전반부에 있었던 바그너의 파우스트 서곡과, 바그너의 베젠동크 시에 의한 5개의 가곡에 대한 이야기는 넘어가자. 어차피 내가 잘 모르는 곡이기도 하고, 사실 오늘의 공연을 오게 된 것은 후반부에 있었던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때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간단하게 언급한다면 앞 선 두개의 연주곡 모두 상당히 잔잔하고 조용한 곡이어서 수원시향의 연주상태를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곡 자체가 잔잔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발동이 다 걸리지 않은 듯한 느낌을 약간 받았다는 정도면 될 것 같다.

인터미션 후 시작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이미 이 곡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지만, 혹시 이 곡에 대해 잘 모르는 분에게는 <봄의 제전>이라는 곡 타이틀과, 또 요즘 본격적으로 꽃이 피며 만개하는 봄의 날씨와 아주 잘 어울리는 조합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사실 곡을 들어보지 않은 분도 예상할 수 있는 식으로 표현한다면 이 곡은 <봄의 제전>이라고 하기보다는 <봄의 난리>라고 하는 게 더 와닿을 수 있을 것 같다. 스트라빈스키가 현대음악 작곡가라는 것을 추가로 언급하고 이 곡에 대해 쉽게 설명하면 온갖 난잡한 소리들이 이곳 저곳에서 튀어나오는 어지럽기 그지 없는 곡이라 할 수 있다.

조폭영화에서 수십명이 몽둥이를 들고 난장판을 벌이고 싸우는 장면을 보면 처음에는 정말 개판이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칼과 몽둥이가 이리 저리 날아다니고 집기가 부서지는 그 난리통에서 수십명이 엉켜 붙어 싸우는 장면을 찍으며 실제 연기를 하고 있는 배우들이 조금도 다치지 않게 하려면 눈에 보이는 난리통과는 달리 배우 한사람 한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맞추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먹질 하나, 피하는 행동 하나, 내딛는 발자국 하나까지 다 미리 계산해서 수십번, 수백번 연습을 해야 사실상 그런 장면을 찍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치밀한 사전 계획과 연습이 없으면, 그 난투극 장면은 말 그대로 배우 여러명이 다칠 수 있는 난장판이 될 수 밖에 없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들으러 가면서 가장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이 복잡하기 그지 없는 음악을 얼마나 합을 맞춰 소리를 만들어 낼 것인가 였다. 언뜻 들으면 정말 난장판이 따로 없구나 하는 소음일 뿐이지만, 연주된 음반을 몇 번이고 들어보다 보면 그 불규칙한 사운드 간에 정교한 맞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러한 세밀한 조정을 통해 나오는, 불규칙하게 보이지만 규칙에 딱딱 맞는 소리에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날 수원시향의 <봄의 제전> 연주가 합이 잘 짜인 난장판 연극을 보여줄 지, 아니면 그냥 난장판 그 자체를 보여줄 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수원시향의 연주는 여러 번 들었지만 피아니스트 출신 김대진의 지휘는 처음이었기에 그의 지휘자로서의 실력을 확인하고픈 기대 또한 있었던 연주회기도 했다. 그런 기대를 갖고 듣게 된 이날 수원시향의 <봄의 제전>은 그야말로 합이 제대로 맞춰져 있어 그 난잡한 소리 속에 치밀하게 짜여져 있는 질서정연함을 확인할 수 있는 연주였다. 각 악기가 서로 다른 박자로 서로 다른 소리를 미친듯이 뿜어내는 부분에서도 각 악기간의 합은 김대진의 지휘하에 철저하게 통제되어 맞춰져 있었고, 악기들 개별 소리 또한 조금의 모자람 없이 충분히 갈고 닦아진 소리를 들려 주었다. 내가 파악할 수 있는 수준에서는 악기의 삑사리도 없었고, 박자의 흐트러짐도 없는 완벽에 가까운 연주였다. 휘휘 저어 놓은 흙탕물과 같은 혼란을 담고 있는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수원시향은 일급수 물처럼 맑은 연주로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었다.

수원시향의 연주에 흠뻑 빠져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들으며 한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그의 음악은 여전히 충격인데, 이 음악이 초연되던 그 시기에 청중들에게는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꼬리를 물어 지난 주중에 들었던 베토벤의 그 유명한 5번 교향곡 <운명>에까지 이르렀다. 지금이야 클래식 음악을 모르는 사람도 다 흥얼거리는 음악이 되어버렸지만, 베토벤의 교향곡은 그렇게 너무 많이 연주되고, 너무 많이 들어 질렸다 생각이 들다가도, 어느 순간 듣다 보면 어떻게 이런 음악이 그 옛날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슴을 벅차게 하는 그 무엇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지난 주중에 오랜만에 꺼내든 아르농쿠르의 베토벤 교향곡을 들으면서, 특히 5번 교향곡을 들으면서 잠시 손에서 일을 놓고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머리 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들으며, 스트라빈스키 당시의 사람이 <봄의 제전>을 들으며 충격을 받고, 한세기가 지난 지금의 내가 <봄의 제전>을 들으며 충격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베토벤 시절 그의 5번 교향곡을 들었던 당시의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유명한 빠바바밤~ 소리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감동으로 끝난 연주는 여러 번의 커튼콜로 이어졌고, 몇 번의 커튼콜에 이어 다시 지휘대에 오른 김대진의 손짓과 함께 흘러나온 이날의 앵콜곡이 흘러나왔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뭐 별거 아닌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 때는 정말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까지 들었다. 앵콜곡으로 다름 아닌 베토벤 5번 교향곡 <운명>의 4악장이 연주되는 것 아닌가. 정말 가슴이 덜컥 내려 앉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생각도 못했던 이 우연의 일치에 어쩔줄 몰라 하며 앵콜로 연주되는 곡을 들었고, 또 한 번 열렬한 박수로 감사의 표시를 하고 돌아 왔다.

이날 연주된 곡들이 비교적 짧은 곡들이었기에, 인터미션도 있고, 초반부 가곡을 부른 소프라노의 앵콜곡도 있었고, 또 앞에서 말한 베토벤 운명 4악장 앵콜까지 있었음에도 7시에 시작한 연주회는 8시 40분 정도에 끝났다. 연주회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도 나름 짧지 않은 길인데, 덕분에 이른 시각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더할나위 없는 밤이었다.

수원시향과 지휘자 김대진. 다시 한번 이날의 연주에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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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Mahler(186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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