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을 여러 번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레 음악 전체의 흐름에 익숙해지는 때가 있다. 비록 한시간여에 달하는 음악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외우는 것은 아니지만 음악을 듣고 있으면 자연스레 현재 진행되는 멜로디가 끝나고 그 다음에 어떤 멜로디가 이어지는지의 대한 대략적인 감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비전공자로서 음악을 여러 번 들으며 익숙해지는 것과 오케스트라 곡 전체를 암보로 지휘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레벨의 간극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이 듣다 보면 자연스레 곡 전체의 흐름에 익숙해지는, 소위 말하는 나름의 스토리가 있고 기승전결로 짜여진 음악은 암보로 지휘하기도 비교적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연주된 드뷔시의 <바다>나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의 경우는 아무리 많이 들어도 곡의 흐름 전체가 익숙해지기 어려운 축에 속하는 곡이다. 매 순간 순간의 멜로디는 익숙해 질 수 있지만 이 멜로디에서 저 멜로디로 이어지는 흐름까지는 아무리 여러번 들어도 예측이 쉽지 않다.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승전결이 비교적 명확하게 파악되는 음악은 작곡자가 말하는 스토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이성적으로 그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반면 오늘 연주된 드뷔시와 슈트라우스의 곡은 작곡자의 감정의 흐름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음악의 흐름 전체를 꿰뚫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성이 아닌 감성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니 그만큼 암보로 지휘하는 것 자체도 일반 교향곡보다 몇 배는 힘든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런 이유 때문에, 암보로 지휘하는 연주를 여러번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지휘자 구자범이 두 곡 모두를 암보로 지휘하는 것이 나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도 놀라운 일이었다. 한 시간에 가까운 연주시간 내내 한 사람의 감정을 한치의 틀림도 없이 기억해 재생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곡을 암보로 지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휘자 구자범에 대해 다시 한번 놀라는 순간이었고, 오늘 연주에 대한 강한 인상이 남게 되는 주요한 원인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지휘자 구자범은 드뷔시 <바다>의 경우에는 암보에 맨손으로 지휘를 했고,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은 암보에 지휘봉을 들고 지휘를 했다. 지휘봉의 유무가 무슨 의미가 있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드뷔시의 <바다>,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 모두 실연으로 쉽게 접하기 힘든 곡이다. 이런 곡을 레퍼토리로 삼았다는 것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주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일단 전제로 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를 제외한다 하더라도 오늘의 공연은 두 곡 모두에 있어 크게 문제 삼을 것 없는 무난한 연주를 보여준 것 같다. 좀 더 말을 덧붙인다면 먼저 연주한 드뷔시의 <바다>가 좀더 무난한 축에 가까운 연주였다면, 인터미션 후에 연주한 <알프스 교향곡>은 한층 더 안정된 상태에서 수준 이상의 연주를 들려주었다고 판단된다. 실연으로는 처음 듣는 <알프스 교향곡>이었는데, 음반으로만 들을 때 익숙해져 있던 다이내믹을 뛰어넘는 스케일에 사실 여러 번 감탄한 순간들이 있었다. 암보로 지휘하는 연주자가 매 phrase마다 세부적인 지시를 내리고 있음도 놀라웠고, 그 지시에 따라 큰 흔들림 없이 따라오는 단원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악보만 보고 연주를 하지 않고 악보와 지휘자의 손동작을 계속적으로 번갈아 가며 지휘자와의 호흡을 맞추는 몇몇 단원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오늘과 같은 곡을 실연으로 듣는 매력중의 하나는 음반으로 들을 때에는 그냥 묻혀서 지나가는 세세한 소리까지 구분해서 들을 수 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꼭 오늘과 같은 음악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 교향악을 실연으로 들을 때 개인적으로 매번 느끼는 쾌감 중의 하나는 현과 관이 모두 자신의 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는 그 사이를 뚫고 선명하게 귀에 들어오은 트라이앵글의 작은 소리를 들을 때이다. 오늘의 연주에서도 모든 악기가 자신의 한계에 가까운 음량으로 뿜어내고 있는 순간, 타악기 주자가 아주 조심스럽게 살짝 터치한 트라이앵글의 그 맑고 투명한 소리가 귀에 선명하게 전달될 때마다 역시 실연의 매력은 이런 것이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오늘의 연주는 트라이앵글과 같은 일반적인 타악기 외에도 여러 타악기들의 소리를 눈과 귀로 선명하게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특히 설명에 따르면 폭풍과 천둥 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경기 필하모닉 자체적으로 제작했다고 되어 있는 두개의 타악기는 귀는 물론이고 보는 눈도 즐겁게 만들었다.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은 모두 22개의 곡으로 이뤄지는데, 매 곡의 제목이 무대 뒤쪽에 있는 스크린에 표시가 되었고, 특히 곡에 대한 설명이 담긴 프로그램이 무료로 배부가 되어 관객들 모두가 22번째 곡 제목이 스크린에 표시될 때 이제 곡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밤’이라는 표제로 시작한 음악이 아침을 지나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가 폭풍우를 만나고 해가 진 다음에 다시 22번째 곡 ‘밤’으로 조용히 끝나가며 마지막 음까지 작게 사라진 그 순간, 음악이 끝나기 무섭게 박수가 터져나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분명 많은 사람들이 음악이 끝났음을 알고 있는 그 적막의 순간이 한동안이나 계속됐다.

지휘자도 마지막 phrase를 마친 그 자세 그대로 멈춰 있는 그 순간…. 음악은 사라지고, 지휘자도 단원들도 움직이지 않는 그 적막의 순간, 관객들도 앞서 박수 치지 않고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던 그 한 5초 남짓의 적막의 시간이 주는 쾌감은 강렬한 사운드에서 얻는 것 훨씬 이상이었다. 난 오늘의 연주 중에 모든 연주가 끝나고 소리도 사라진 후, 지휘자, 연주자, 청중 모두 정지 상태에 있었던 그 5초 남짓한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거짓말 하지 않고 정말 그 적막이 주는 감동이 제일 짜릿했다.

땀으로 범벅 된 지휘자 구자범이 여러 번의 커튼 콜을 하는 중에 1층 좌측 앞쪽 열에 팬인지, 아니면 무슨 모임에서 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휘자 구자범이 지나갈 때마다 괴성을 질러대는 한 무리 여성들이 있었다. 관객들도 웃고, 무대 위 단원들도 이게 무슨 일인가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웃는 그 순간에 지휘자 구자범은 여러 번 그쪽을 향하며 그 장난끼 어린 해맑은 미소를 몇 번이나 지었다. 진지하게 음악을 하는 지휘자인 구자범이 더욱 매력적인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저런 진중함 속에 보이는 천진난만함, 유쾌함인 것 같다. 자기 본연의 일에는 한치의 허술함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이 그 노력의 결과를 앞에 놓고 짓는 여유 넘치고, 해맑은 미소는 언제 보아도 늘 참 좋다.

오늘 연주회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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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Mahler(186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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