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와 본격적으로 친해지는 데 한가지 장애물을 맞닥뜨렸다. 다름 아닌 오글거리는 유치한 사랑으로 이뤄진 줄거리 그 자체다. 말러나 브루크너처럼 이마에 굵은 주름 하나 짓고 엄숙한 표정으로 들어야만 어울릴 것 같은 음악을 주로 즐겨 들어서인가. 아무튼 어제 투란도트의 공연을 보면서 화려한 무대와 의상에 놀라고, 여전히 아름다운 사람의 목소리에 좋아하면서도, 내가 왜 이런 유치하기 짝이 없는 사랑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한 켠에서 문득 들었다. 또 한편에서는 푸치니라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가(또는 대본작가가) ‘투란도트’라는 작품을 쓰면서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고대 중국의 왕국이라는 배경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투란도트’의 배경은 전설 시대 중국이란다. 그러니까 역사적 사실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작가의 상상력에서 만들어진 배경이라는 것이다. 당시 유럽 사람들에게 고대의 중국이라는 말 자체가 가져다 줄 수 있는 신비한 느낌을 전달하려고 사용한 것으로 보일 뿐 중국이라는 배경에 별다른 역사적 의미를 가져다 붙인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황제가 거하는 수도는 베이징인 걸 보아도 뭔가 어설프다. 작곡 연대가 1920년대니까 당시 중국은 청나라가 망하고 중화민국 시절이겠다. 청에서 중화민국으로 바뀌면서도 수도는 베이징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아마 이 고대 중국의 황제가 살던 도시도 그냥 쉽게 베이징으로 정했나 보다.

옛날 외국 군대가 능욕하고 죽인 로우링 공주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세 개의 수수께끼를 맞추지 못하는 외국 출신의 청혼자들을 무자비하게 죽여온 자가 바로 투란도트다. 핑,퐁,팡이 노래하던 것이 다 기억나진 않는데 매년 수명씩 그런 식으로 죽어 나갔고, 이번에 도전한 칼라프만 하더라도 금년에 13번째 도전자라고 노래 했었다. 물론 그 앞의 12명의 도전자는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 다 죽었고, 사실 오페라의 첫 장면은 12번째 대상자였던 한 페르시아 왕자의 처형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이렇게 무자비한 투란도트가 낸 세 개의 수수께끼를 칼라프 왕자가 다 맞추자 규칙에 따라 칼라프 왕자는 투란도트와 결혼할 자격을 얻게 되었는데, 투란도트가 끝까지 결혼을 거부한다. 참지 못한 칼라프 왕자가 내일 아침이 되기 전까지 자기 이름을 투란도트가 알게 되면 자신의 목숨을 바치겠다는 추가 제안을 한다. 그러자 투란도트는 칼라프를 사랑한 여노예 ‘류’를 고문까지 해서라도 칼라프 왕자의 이름을 알아내려 하지만 류는 칼라프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결을 선택한다. 류의 죽음 이후에도 칼라프가 몇 번이나 투란도트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차갑게 거절을 당하고, 마침내 칼라프는 모든 걸 포기한 채 목숨을 포기하고 자신의 이름을 투란도트에게 알린다.

그렇게 무자비하고 차갑던 투란도트가 그런 칼라프의 행동에 충격을 받았는지, 감동을 받았는지, 심판의 시간에 ‘이 젊은이의 이름을 알아냈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라고 하면서 마지막에 한 말은 ‘그 이름은 바로, 사랑!’이라는 대사를 하며 해피엔딩으로 극이 끝나는데, 이미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찌나 오글거리던지, 박수는 치면서도 이런 결말에 브라보라 외치는 게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실 그런 마지막 장면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스토리도 뭔가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아 보이는 것도 사실 좀 불편했다.

공연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 내내, 이렇게 유치하기 짝이 없는 배경에 또 다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를 입혀 놓은 것을 어떤 식으로 즐겨야 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화려한 무대, 의상, 그리고 아름다운 노래 그런 것들에만 집중을 하면서 즐겨야 하는게 오페라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좀 싱숭생숭했다.

물론 진지한 내용의 오페라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 유치하고 뻔해 보이는 스토리로 이루어진 오페라라는 장르를 굳이 노력하면서까지 친해져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시선을 돌려보면, 가끔 내 가슴을 그렇게 울리고, 그래서 정말 최고의 노래라 생각하며, 또 때로는 노래방에서 나의 내면 저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감정까지 끄집어내어 진심을 다해 부르던 대중 가요 노래 한 소절도, 사실 가사 하나 하나 따져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가사로 되어 있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어떤 때에는 그런 뻔한 내용이 오히려 공감을 더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오페라라는 장르 자체가 그런 뻔한 설정에서 오히려 인간의 깊은 감정을 끄집어 내는 것을 의도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굳이 유치함에 너무 몸서리치지 말자는 생각으로 일단락 지었다.

아무튼 유치하고 오글거리긴 하지만 이왕 시작한 거 오페라는 좀 계속 친해져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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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Mahler(186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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