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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2013)

경기필하모닉 '류재준의 밤' - 2013.04.06



한 시립교향악단을 참 좋아했었던 적이 있었다. 한때는 좋아했는데 지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전히 기회가 되면 연주를 보러 가곤 하지만, 시립교향악단의 설립 목적에 맞게 그 교향악단은 좋은 공연을 예술의 전당에 올리기보다는 교향악단이 속해 있는 시의 공연장에서 주로 많이 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평일에 그곳에서 있는 연주를 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하다 보니 결국 일년에 많아야 한 두 번 연주를 보면 많이 보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예전처럼 그 교향악단을 열렬히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약간 쑥스러운 상황이 되어버렸다고 하는게 더 맞는 말일 것 같다.

지금은 자주 연주를 듣지 못하지만, 몇 년 전 그래도 꽤 자주 이 교향악단의 연주를 들을 때에는 종종 ‘정말 연주 잘한다’라는 감탄이 자연스럽게 나올 때가 많았다.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들을 일일이 실연으로 확인한 것도 아니면서도 이 정도 연주면 어디 내 놓아도 꿀리지 않겠다 하는 확신과 믿음이 있었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도 이제 꽤 많이 본 것 같다. 무엇보다도 주요 공연이 주말에 있어 그래도 시간을 내어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겨서인 듯 하다. 자주 접하니 정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연주 때마다 불만이 있었던 적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 ‘정말 연주 잘한다’라는 느낌까지는 들어본 적은 없다. 무난한 연주를 들려주긴 하지만 그래도 어딘가 약간의 합이 흐트러지는 느낌, 긴장감이 약간 떨어지는 듯한 느낌은 여전히 든다. 지휘자 구자범의 그 열정적인 지휘와 장난끼가 보이는 미소를 맘에 들어 하긴 하지만 그의 열정이 단원들과 완전한 소통을 이루어 음악으로 온전히 구현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경기필하모닉을 뭐라 질책하려 하거나 불만이 있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매 번 새로운 레퍼토리와 시도를 통해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경기필하모닉에 대한 감사의 말을 하려고 한 것인데, 막상 감사의 글을 하려니 그냥 근거 없이 무조건 좋다고 하는 말로 들려지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서두에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경기 필하모닉의 부족한 점을 드러내게 된 것 같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제 저녁에 있었던 작곡가 류재준의 곡들로 이루어진 ‘류재준의 밤’ 공연도 딱 그렇다. 누구도 쉽게 시도하지 않는 공연 레퍼토리를 구성한 것도 그렇고, 프로그램 안내장에 써 있듯이 이런 연주회 기획으로 재정적으로도 상당한 부담이 있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이런 공연을 이끌어 낸 것만으로도 지휘자 구자범을 비롯한 경기필하모닉 단원과 관계자 모두 칭찬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생각한다.

현대음악에다가, 다들 처음 연주하는 곡이라 쉽지 않았을 것이고, 연주회장에 찾아온 관객들도 대부분 처음 듣는 곡들이었기에 쉽지 않았을 연주회였는데, 참 잘 끝난 것 같다. 기본 이상은 늘 보여주는 경기필의 내공은 장점이라면 장점이라 할 수 있고 단점이라고 하면 단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제의 연주도 무난한 연주였고, 어디 크게 흠이 난 연주는 아니었지만 또한 반면에 어디 한 부분 크게 부각해서 칭찬해 줄만한 부분도 별로 없어 보이는 연주였던 것 같다. 비오는 어수선한 날에다가 입장하는 관객들 중 어린 학생들이 많이 꽤나 걱정했는데 연주에 방해될 만한 일은 아무 일도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메인 연주곡이었던 ‘교향곡 1번-레퀴엠’보다도 첫 곡으로 연주되었던 오페라 ‘장미의 이름’ 서곡 연주가 더 인상깊었다. 위촉을 받아 작곡 중으로 2015년 완성 예정인 오페라 ‘장미의 이름’의 서곡이었는데,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원작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미스터리하고 기괴한 수도원의 장면이 자연스레 머리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현대음악의 느낌을 갖고 있어 이해하기 힘들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과 동시에 그 안에 담에 보여주려 하는 스토리가 읽혀지는 듯한 묘한 대비가 나에게는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2015년에 완성이 되고 난 후에도 국내에서 이 오페라가 무대에 오르는 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 기회가 온다면 꼭 한번 오페라 공연도 보고 싶게 만드는 곡이었다.

주말 공연이었지만 장소가 예술의 전당이 아닌 수원에 있는 경기도문화의 전당이었기에 시간이 될지 안될지 몰라 스케줄러에 넣어 놓기만 하고 예매 하지 않고 있었던 공연이었다. 그런 와중에 토요일에 강한 바람과 많은 비가 하루 종일 내린다는 예보를 앞에 두고 나니 공연장 가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 거의 포기했던 공연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잠시 내려가 자유의 몸이 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와서 점심부터 같이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다시 저녁도 같이 먹고 공연까지 함께 보며 편히 다녀올 수 있었다. 아무튼 유부남 둘이서 데이트 한 번 자~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