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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예정 곡이 말러 6번에서 베토벤 6번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았던 몇 달 전, 사실 이 연주회에 대한 기대는 이미 그때 놓아버렸다. 연주회를 갈까 하는 마음도 사실 그 때 접었다. 지난 몇 번의 연주회를 통해 아시아필하모닉의 연주 수준에 만족했고, 약간 부풀려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었던 정명훈도 역시 명불허전임을 확인했기에 사실상 모든 문제는 연주 레퍼토리에 있었다. 베토벤 6번과 브람스 4번이라... 여러 연주회 중의 하나였다면 어느 정도 괜찮다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무더운 여름 동안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고생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한 처방으로는 역시 약해보였다. 별로 만족스럽지 않은 레퍼토리에 만만치 않은 티켓 가격까지 겹쳐 내키지 않는 연주회긴 했지만 어쩌랴, 한산한 여름 기간 동안 아내와 같이 갈 수 있는 그나마 괜찮은 유일한 연주회였으니. 좋은 위치의 자리에서 맘 편하게 듣고 오자는 생각 뿐이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악기 배치였다. 지휘자 왼쪽에 제1 바이얼린과 제2 바이얼린을 위치시키는 일반적인 배치에서 제 2 바이얼린을 지휘자 오른쪽 첼로 자리로 배치를 옮기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연주를 들으며 가만히 보니 제1,2 바이얼린은 평소대로 지휘자 왼쪽에 있었고, 지휘자 오른쪽 앞으로 나와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비올라였다. 지휘자 오른쪽 앞 열을 차지하는 첼로가 안쪽으로 들어가고 대신 비올라가 앞쪽으로 나와 있는 배치. 이런 배치를 본 적이 있나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연주회 초반 한동안은 이런 악기 배치의 이유가 무엇일까 추측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래도 특별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고, 연주회 후에 검색이라도 해볼까 했지만 일단 귀차니즘으로 패스.

쩌렁쩌렁 울리는 음악도 좋지만 심신이 지치고 메마른 상황에서는 목가적인 베토벤 6번의 부드러운 선율도 나름 괜찮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아이팟으로 래틀의 연주를 들으면서도 나름 괜찮겠다 싶었다. 하지만 막상 연주를 들으면서는 ‘이렇게 나긋나긋한 음악이 필요한 게 아닌데…’하며 멍하니 듣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아무리 맛있는 천하진미가 있은들 식욕이 없으면 말짱 헛것이라더니. 고막까지 도달하는 연주의 질은 나무랄 데 없이 좋았지만 고막을 지나 신경을 지나 뇌에 도달한 연주는 별 감흥이 없었다.

후반부 연주 곡은 비교적 쩌렁쩌렁한 브람스 4번이었지만 멍해져 있는 뇌를 자극하기에는 역시 부족했다. 가만히 호른 소리를 듣다 보니 음정이 불안하거나 그렇지는 않았지만 미묘하게 약간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 또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연주자들도 평범한 레퍼토리에 그다지 긴장하고 있지 않은 듯 보였고, 그 때부터 조금 관심을 갖고 보니 어딘가 약간씩 풀려있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단지 느슨해진 나의 뇌의 문제라 생각했었는데 고막까지 들어오는 소리도 그리 완벽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지난 두 번의 아시아필하모닉 연주회는 음악당이 꽉 찼던 것 같은데, 이번엔 빈 자리가 듬성듬성 보인다.

아마도 8월말부터 시작하는 서울시향과의 말러 교향곡 전곡 사이클로 정명훈이 많이 바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이를 준비하다 보니 말러 6번을 연주하려던 처음의 레퍼토리가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졌을 것 같고, 아시아 각국의 연주자들이 모여 이루어진 아시아필하모닉의 특성상 충분한 연습시간 확보의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이번에는 쉽게 쉽게 가자는 식으로 된 것 아닌가 하는 결론에까지 이르렀다. 레퍼토리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 알면서도 예매했고, 연주회도 연주 그 자체로 크게 나무랄 데 없으니 큰 불만은 없지만, 말마따나 1년에 한번 정도 있는 아시아필하모닉 연주회인데…. 그래도 뭐 이번엔 쉽게 쉽게 갔으니 다음 번 연주는 좀 삐까뻔쩍(?)하게 가줬으면 하는 작은 바램 정도 가져본다.

p.s. 베토벤 6번 1악장 끝난 후, 지금이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는 한겨울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이 한여름, 감기 걸리기도 쉽지 않을 텐데 무슨 기침이 그렇게 많은지… 연주회 도중에도 기침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그치지 않더니만 1악장 끝나고 나니 무슨 독감 병동에라도 있는 듯 난리다. 진짜 심한 감기가 걸린 것도 아닐 텐데, 기침 참는 게 그렇게 어렵나? 2시간 기침 않고 있는 거 막상 해보면 정말 쉽디 쉬운데… 내가 볼 때 이 정도 기침은 그냥 버릇이다. 악장간 휴지 시간에 내는 기침소리까지 뭐라 한다 할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보면 기침도 하는 사람만 한다. 침 꿀꺽 삼키면서 좀 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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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Mahler(186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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